七氣湯과 不動心 

 
 

   일곱가지의 정, 즉 칠정이 얼키고 설키어 마음이 답답하고 배가 아플 때 쓰는 칠기탕은 인간의 기쁨・노여움・걱정・생각・슬픔・두려움・놀라움 혹은 기쁨・노여움・슬픔・즐거움・사랑・미움・욕심이라고 분류하는 일곱 가지의 망령된 정을 치료한다. 정이 쌓이고 막혀 가슴과 배가 뒤틀리고 꼬이는 듯한 심한 통증을 치료하는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들 하는데, 왜 배가 아플까? 땅에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 자식을 잃은 어미는 왜 그리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고 하는가? 억울한 구박에 지친 며느리는 왜 가슴과 배에 커다란 덩어리가 생길까? 쫓기는 듯 긴장 속에 시달리는 수험생은 왜 손에 땀이 나며 자주 복통 설사가 나는가? 주위의 흔한 예로써 알 수 있듯이 마음이 장난이 이다지도 극심하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 통증을 느끼면 X레이를 찍어 본다. 허리가 아프면 소변검사, 가슴에 덩어리가 있으며 조직검사・피검사・뇌파검사・심전도검사・가래검사・대변검사・소화액검사・쓸개물검사・눈물・콧물・침검사 등등의 온갖 검사를 다 해본다. 바야흐로 현대는 과학적 검사시대이지만 마음검사는 하려 하지 않는다. 선가에 ‘한로축괴 사자교인(漢盧逐塊 獅子咬人)’이라는 말이 있다. ‘어리석은 똥개는 돌을 던지면 돌을 쫓아다니고, 사자는 바로 사람을 문다’는 뜻이다.

  정신적 원인은 외면하고 육체적 반응만을 일일이 쫓는 현대인의 어리석음도 이와 같다. 가슴과 배가 아프더라도, 그것은 단순히 음식물의 부조화 때문이 아니라 일곱가지 정, 즉 감정의 부조화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들어 걸핏하면 갖다 붙이는 ‘신경성’이란 병명은 그럴싸하긴 하지만 애매한 점이 적지 않다. 
  현대인의 근시안적 사고방식은 자신의 확실한 내면통찰에 어둡다. 사명대사의 제자이며,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침술체계를 정립시킨 사암도인의 말씀 중에 칠정의 변화를 깊이 살펴야한다는 말이 있다. 감정이 나타나고 사람살피기 위해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이는 수행의 오묘한 경지이며 구도인이 열망하는 경지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범인이 도달할 수 없는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정각을 얻는다거나 해탈에 이른다고 하는 것처럼 최고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기초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곧 자신을 관조하는 것이요,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 변화를 살필 수 있는 것이다.
 
감정이 일어나지 않음을 중(中)이라 하며, 그 정의 쓰임새가 조화있음을 화(和)라고 한다. 즉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상태인 中을 모른다면 中心이 없는 인간이다. 중심이 없으므로 잘 흔들린다. 잘 흔들리므로 어둡고 어지럽다. 삼계가 혼란스럽게 일어남이 이와 같으니, 욕계・색계・무색계의 원인이 모두 이 한 생각을 일으키는 데에 있다.
  한 생각의 욕심이 일면 욕계, 한 생각으로 분노하면 색계요, 한 생각이 어리석으면 무색계이다. 그래서 달마대사는 오직 마음을 관하는 한 가지 법이 수행을 섭수한다고 했다. 일찍이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서 면벽수행하고 있을 때 찾아간 혜가는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르침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자기 마음을 찾는 내면의 통찰이었다.
 
등을 돌리고 앉아 박대하는 달마대사이건만 혜가는 눈이 가슴까지 쌓이도록 동굴 앞을 떠나지 않고 드디어는 자기의 팔을 잘라 보이며 굳은 결심을 표시했다. 그제서야 달마대사는 혜가에게 물었다.
 
“왜 왔는고.”
 
“마음이 아픕니다.”
 
“그 아픈 마음을 좀 보자.”
 
이 한마디에 혜가는 자기의 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찾아보니 없습니다.”고 대답한다. 혜가는 한 생각이 일기 전인 中의 상태를 되찾은 것이다.
 
이처럼 약도 필요없고 검사도 필요없는 묘한 처방이 관심법이건만 스스로 두려워하여 물건에 의지하려 한다. 밝고 맑아서 어둡지 아니하여 고요히 비추는 공력이 날로 새로워지면 감정 이전, 즉 한 생각 이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도 비교하는 한 생각이 없으면 배가 아플리 없고, 특별히 야심적으로 성곡하려는 두뇌를 식히고 나면 긴장이나 두려움의 생각으로부터 해방 될 것이다.
 
고요히 반조하는 공부를 익히기 위한 묘한 방편으로써 선가에서는 공안(公案)을 참구하는 법이 있다. 최근 101세로 입적한 혜암선사는 바로 이런 묘법의 화신이었다. 모든 법이 약과 같아 미혹된 뭇 중생들의 망령된 정을 다스린다. 칠기탕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이 부처님의 법인데, 그 중 참선법이 묘약이다. 의사에게 의지할 필요도, 돈에 의지할 필요도 없는 묘약이 묘약으로서 공안을 하나 참구해 보자.
 
‘부처님 법이 엄하고 존중하여,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아니하여도 쇠바퀴가 녹는다’는 말이 있다. 무엇이든지 움직이고 변하여야 녹는 법인데, 어째서 털끝 만큼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면서 쇠바퀴가 녹을 수 있다고 하는가? 

한발짝도 떼지않고 

일곱바다 건넌임이 

비로자나 부동여래 

금강부채 흔드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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