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오운 육기
3.
주역은 인간사이므로 周易八卦를 공부하다 보면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보이지 않는 불문율을 공부하게 됩니다. 인간이 대체적으로 음과 양으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남편과 아내의 경우와, 남편과 시어머니, 아내와 시아버지 사이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특히 대가족일 때는 그 집안 사람 사이의 예절, 혹은 불문율이 얼마나 복잡해 지겠습니까. 少陰君火인 사위와 太陽寒水인 며느리는 다른 혈통에서 들어왔으므로 그 집안 내의 엄청난 변수로 작용하게 됩니다(그래서 사위나 며느리는 잘 맞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천지가 있는데 해와 달이 중간에서 온갖 조화를 다 부림과 같지요. 태극기의 天地日月 4卦도 인간관계와 꼭 같이 비유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며느리 한 사람을 중심으로 볼 때에도 며느리와 아들, 며느리와 시누이, 며느리와 시아버지... 등 무수한 관계가 있는데 가족구성원 서로 서로의 관계는 얼마나 복잡하고 또 경우가 많겠습니까. 그렇지만 이러한 관계! 이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불행하게 됩니다. 이 관계의 기초훈련을 시켜주는 것이 바로 주역입니다.
만두나 찐빵을 손으로 눌러보면 그 알속이 약한 부분으로 터져 나오듯이 우리 인체내의 12장부 중 하나만 이상이 생겨도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부인이 아프다고 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먼저 우울해집니다. 남편이 우울하니 남편의 어머니가 또 우울해집니다. 다시 아버지도 우울해집니다. 한편 부인에게 병이 생긴 원인도 남편으로 인해서 혹은 시어머니, 시누이, 시아버지 등 다양해 집니다. 이렇듯 복잡하고 다양한 것입니다. 부인이 병이 났다는 사실 하나로부터 파생되는 일이 이러한데 복잡다단한 인간사에서야 오죽하겠습니까.
간장병의 원인이 꼭 쓸개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다만 쓸개로부터 오기 쉽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장병! 木에 병이 생겼으면 水生木이니까 腎臟만 補하면 되겠군' 이런 식으로 착각하지 마세요. 인체는 평등한 유기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디서, 어떤 원인으로 병이 왔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五行理論이나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六氣理論도 중요하겠으나 결국은 여러분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경락 중 補와 瀉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는 24이지요. 이 중 하나를 선택하는 확률은 1/24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자에게 적합한 하나의 방법을 택하기까지 여러분이 깨어 있지 않고는 힘들다는 말입니다. 몇 가지 공식만을 막연하게 외워서 쓰는 방법과는 아주 다릅니다. 확률이 1/24이므로 저 역시도 끊임없이 토론과 그룹미팅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이런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은 '깨어있음'입니다. 우주가 그러하듯 순간순간의 변화가 극심한 우리 인체의 病變을 여러분이 이해하려면 반드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장병이 발병했을 때 쓸개, 소장, 심장 등 12가지 상황과 治法上의 복합적인 상황을 보아야 합니다.
"方藥合編" 中統의 6번 靈仙除通飮을 보면 "治肢節... "'濕에 風寒이 겹쳐 濕熱이 나는데 이것이 肢節사이로 유주할 때 일어나는 통증을 다스린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風은 厥陰(厥陰風木), 寒은 太陽(太陽寒水), 濕은 太陰이므로 위의 병은 3개의 경이 혼합된 것이지요. 色으로 볼 때 빨강, 파랑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보라색도 있다는 것이지요. 또 風濕이 합쳐질 수도 있고, 寒熱이 서로 교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TV에서 과학자와 의사가 대담을 하는 데 한약이나 生藥으로 治病하지 말고 모든 것을 과학으로 해결하라더군요. 과학은 분류이고 이론 아닙니까? 병을 치료 하는데 있어서 이론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론과 지식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합니다. 한 순간이라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질병이 나타날 수 있는 원리와 실제로 질병이 서로 연관되어 나타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시 八卦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周易八卦를 인간세계에 대비시켜 운동성이 없는 평면적인 관찰을 했습니다. 2차원적 평면관계로 보았지요. 2차원에 공간적 요소를 첨가하면 3차원이 되고, 공간에 시간(운동성)을 부여하면 4차원이 되지요. 운동성 차원인 4차원까지는 못본다 할지라도 우리 인체를 뒤돌아 살펴보면 항상 天과 地로 나뉘어집니다. "黃帝內經" 五運六氣 편 첫머리에 보면 '左右는 陰陽之道요, 天地는 萬物의 上下이다. 水火는 陰陽의 상장이고, 金木은 生成의 始終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始終, 象徵, 上下, 左右, 表裏 등이 陰陽입니다. 이렇게 陰陽을 나눈 것은 陰陽자체를 일정한 기준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그냥 전체적으로 나눈 것입니다.
"內經"五運六氣 편에 岐伯이 말하기를 '그러하오나 얼핏 보아서 다른 두 개의 법칙을 합하여 생각하면 거기엔 일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대체로 음양을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이것을 넓혀서 만가지로 분류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五運六氣의 음양이치가 상식적인 陰陽五運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것입니다. 요컨대 병은 우주만물의 현상이며 이 현상이란 어떠한 것에 대한 상대적인 부조화이므로 어떤 것이 상대인가를 추측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므로 제가 설명하는 오운육기 법칙이 오행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들은 일단 의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렇게 설명하는 이것대로 좋은 것이니까요.
'左肝右肺'라는 말이 있습니다. 肝은 인체의 오른쪽에 있는데 왜 좌측이라고 하는가? 臟腑論으로 볼때는 右肝이지만 左右에 각기 대표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血과 氣論이지요. 바로 右氣左血論에서 左肝右肺論이 나온 것입니다. 左肝右肺論은 경락학적으로 이해해야지 臟腑가 붙은 위치나 모양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유심적으로 본 八卦유추를 보십시오. 오른쪽은 氣, 왼쪽은 血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우리는 氣와 血에 대한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합니다. 氣는 陽, 血은 陰입니다. 또 한방에서는 精・氣・神・血이란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 강의의 기본은 '한방에 나오는 어떤 언어라도 그것은 인간이 일으키고 있는 생각이다'라는 전체조건하에 진행이 되기 때문에 그 의미가 다소 생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체는 전체가 氣와 血로 뭉쳐져 있는데 보편적으로 여성은 血이 實하다고 보고 남성은 氣가 實하다고 봅니다. 물론 어떤 남성은 血이 實하고 氣가 虛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을 많이 일으키면 기가 실해지고 어떠한 생각을 많이 일으키면 혈이 실해지겠습니까? 取하는 쪽은 陰的이니까 血이 實하다 할 수 있고, 주는 쪽은 陽的이므로 氣가 實하게 되겠지요. 남자들은 주길 좋아하고 여자는 받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이 陰陽의 조화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Egoist입니다. 이 Ego에는 '나' '너'라는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되지요. '나'가 '우리'가 된 것은 Ego의 확대일 뿐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 관념의 최고의 분리의식입니다. 나라고 하는 상태, 나를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은 陰的인 사람이고, 남을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은 陽的인 사람입니다. 남녀가 함께 살다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만 남자는 여자의 속성을 이해할 수 없고 여자는 남자의 속성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남녀를 공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성인이나 道人이지요.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밤을 새워 바둑을 두는 남자들을 여자들은 이해할 수 없지요. 여자들은 돈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고 다하지만 실리가 없으면 안합니다. 그런데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때,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지만 한 번 사랑에 빠진 여자는 남자에게 기댄 채 도취가 되어서 누가 보든지 말든지 아예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구상의 음양이 만나게 되는 아프지 않은 형벌이자 사랑이 일어나는 동기입니다. 이 陰陽의 조화로, 그 힘에 의해서 각각 서로 다른 에너지가 만나서 그 무언가 모르는 세계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성적으로는 오르가즘, 또는 無我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깨달음이란 무아의 오르가즘과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율법학자가 와서 하는 말이 "형이 죽으면 형의 부인을 동생이 取妻하고 그 동생이 죽으면 또 밑의 동생이 물려받고 해서 한 여자를 칠형제가 물려받았을 때, 죽어 하늘나라에 가면 어느 남자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하고 교활한 함정이 들어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는 결혼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는 결혼이 없는 세상은 생각지 않고 오직 누구의 마누라가 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자기 남편 이외의 섬김을 간음이라고 설법했던 예수님 말씀에 꼬투리를 잡으려는 이 교활함. 이것은 깨달음의 세계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지상세계와 비교될 수 없고,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어떤 세계, 그것이 바로 도인 것입니다.
인간이 마음 속에 가진 '나', '너'라고 하는 相. 이것은 아주 고질적인 相입니다. '나', '우리'를 너무 강조하면 陰的인 것이 발달되고, 血이 발달된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좌측은 '나'를 많이 강조한 사람이고, 우측은 '너'를 많이 강조한 사람입니다. 이런 식의 유심적인 결부는 잘 생각해보면 근거가 있는 이야기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대가족제도에선 자식교육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시켰습니다. 이 교육은 전적으로 자유교육입니다. 즉 가만히 지켜보는 교육이지요. 그런데 요즘 부모들의 자식교육은 부모의 야심을 주입시키는 교육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지혜, 이것이 없으면 국가도 흥할 수 없고 학문도 흥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연세 많은 분들의 한방 경험을 고리타분하다고 무시를 하고 배척을 합니다. 실험을 해서 화학적인 성분 분설을 해야 옳고 바른 줄 알고 있습니다. 노인의 지혜, 단순하게 보는 지혜를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午・未・申・酉・戌・亥는 좌측에 해당하여 여름에서 겨울까지 가는 陰이 되고, 子・丑・寅・卯・辰・巳는 陽이 됩니다. 午・未・申・酉・戌・亥는 後天, 子・丑・寅・卯・辰・巳는 先天이라고 합니다. 지금 시각이 12시 5분 전이라면, 先天에서 後天으로 바뀌려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手少陰心經의 火氣가 강하기 때문에 옛날 인류 5천년의 변화가 지금은 한 달이면 가능한 것도 있다고 합니다.
앞에서 乾卦는 督脈, 坤卦는 任脈에 해당한다고 말씀 드렸는데 이것은 '유심적인 한 생각이 경락을 이루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증거이므로 이렇게 따로 장을 만들어서 말씁드리는 것입니다. 督脈과 任脈은 우리가 지닌 경락의 유심적인 통로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도구라는 거지요. 남자의 임맥은 會陰에서 출발 하는데 반해 여자들은 거꾸로라고 합니다. 독맥은 天이고 임맥은 地氣를 감독한다고 하는데 얼굴로 비유를 해봅시다. 上下운동을 하는 것으로 눈(目)과 입(口)이 있는데 눈은 윗눈까풀이 움직이고 입은 아래턱이 움직이지요. 또 얼굴의 구멍(竅) 중 2개는 들어가고 2개는 밖으로 나와 있지요. 밖으로 나온 코와 귀는 陽이고 들어간 눈과 입은 陰입니다.
好相이라거나 耳目口鼻가 수려하다는 것은 얼굴의 조화가 좋은 것을 말합니다. 눈은 아주 작은데 코가 갈구리같은 메부리코라면 성질이 급한 사람이 틀림없으며 남 흠잡는데 능한 사람입니다. 한편 눈은 쌍꺼풀지고 코가 납작하면 남녀 불문하고 색을 밝히는 사람입니다. 어린애가 사람을 보고 참 예쁘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린애가 어떻게 예쁜걸 알까요? 그건 陰陽의 조화에 대한 직감입니다. 가장 쉬운 관상법은 입술을 보는 것입니다. 윗 입술이 天(督脈)이고 아랫 입술은 地(任脈)입니다. 그런데 '任'자는 일임한다, 신임한다, 믿고 맡긴다는 뜻이고 여기에 계집 女 자를 추가하면 회임한다, 임신한다, 품는다는 말이 됩니다. 한편 '督'자는 앞에 監(볼) 자를 붙여 "감독한다, 나는 너를 의심한다"는 말이 됩니다. 즉 임맥은 긍정적인 상태, 독맥은 부정적인 상태를 의미하지요. 앞으로는 사람을 대할 때 입술 끝만 보고 이야기를 하세요. 그러면 그 사람의 진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속이 상해서 "에이 콱 죽어버리고 싶다"고 할 때 윗입술이 아랫입술을 덮은 입모양이 되지요. 즉 하나는 生, 하나는 死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족스러울 때의 표정은 아랫 입술이 윗 입술을 덮으며, "으응" 합니다. 만족과 신뢰로 긍정할 때는 임맥이 작용합니다. 대화 중 말로는 "예예" 하면서 윗 입술이 아랫 입술을 자꾸 덮으면 그 사람은 내 말을 믿지 않고 있는 증거입니다.
입술이 교차되는 곳은 天地기운이 교차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입술만 보아도 병의 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자들(督脈의 성질)에게 감독하고 의심하라 하면 잘 하지만 믿으라면 잘 듣지 않지요. 그러나 여자들(任脈의 성질)은 터무니 없이 잘 믿지요. 임맥과 독맥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데에 촛점을 맞추십시오. 선천적으로 독맥이 발달된 사람은 감독하는 일을 잘 하므로 작업장 감독관을 시키면 딱 맞습니다. 듬직하게 생긴 사람이 아랫 입술이 나와 있다면 그 사람과는 함께 일을 해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아랫 입술이 너무 올라간 사람은 터무니 없이 믿으므로 도둑놈도 믿고, 강도도 믿고 따르는 어리석은 신심의 소유자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여러분이 경락의 개념을 깨닫거나 여러분의 마음을 관찰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예입니다. 나머지 여섯 경락도 모두 이런 식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저 예민하게 관찰하지 못해서 모를 따름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사물의 본심을 통찰해야 합니다.
날으는 새의 예를 들어보면, 독수리의 부리는 윗부리가 아랫부리를 덮고 있습니다. 즉 督脈이 발달되어 공격적이고, 의심이 많고, 경계심, 복수심이 강합니다. 반면에 펠리칸과 같은 새는 아래턱이 발달되어 있어서 아래부리 속에 새끼를 넣고 다닙니다. 선천적으로 任脈이 발달된 게지요. 저하고 공부를 잘하고 나면 새 관상, 토끼 관상, 물고기 관상까지도 볼수가 있지요. '저 물고기를 먹으면 몸이 냉해지겠구나!' 혹은 , '더워지겠구나!'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상어를 보세요. 독맥이 발달되어 있어서 성질이 사납습니다. 경계심, 의심이 많고, 공격적이고 陽的이므로 머리쪽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이 상어고기를 많이 먹는다면 어디가 발달될까요? 독수리의 경우는 머리가 작은 반면 깃털의 발달이 좋으므로, 성질이 나면 상체쪽으로 에너지가 쏠리므로 털이 꼿꼿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명태는 윗턱보다 아랫턱이 훨씬 더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제사에 명태를 쓰는 까닭은 명태의 이미지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상어와 명태 중 어느 쪽이 알이나 새끼를 많이 낳겠습니까? 물론 아랫턱(任脈)이 발달된 명태가 임신에 능하겠지요. 이렇게 임맥과 독맥만 관찰하여도 그 자체의 성품을 반은 간파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韓醫學徒라면... ) 이런 이야기에 충격을 받으셔야 합니다. 본과 3, 4학년 중에 많은 고민을 해 본 사람은 충격을 받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쉽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乾卦는 '君子가 종일 건건하여... ' 군자는 하루종일 기분좋게 누굴 믿으라는 말이 아니고, 종일 근신하고, 경계하여 삼가고, 나를 깍고, 자기를 죽여서 살신성인할 생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坤卦는 '항상 유순하고 부드럽고... '무엇이든 받쳐주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父德과 母德을 取象해 낸 것이지요. 嚴父, 慈母의 이 두양친의 조화는 중요합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이 버릇이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일방적으로 임맥의 영향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을 감독하고, 의심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이 전에는 일찍 귀가를 했는데 요새는 매일 밤 12시 넘어서 들어오는데 고민이 있어 보이면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그런가? 내가 어떻게 돕지?" 이런 의심을 해 봐야 합니다. 무조건 믿고"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하면 남편은 멀지 않아 지겨움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너무 독맥만 발달되어 의심이 많아도 곤란합니다. 임맥과 독맥이 서로 조화가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임맥과 독맥을 각각 심리적인 상황으로 나눠서 설명하는 강좌는 우리 한방계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환자가 왔을 때, 그 환자의 아래 윗입술이 평등하면 다른 데에서 원리를 찾지만 만일 그렇지 않으면 독맥과 임맥을 자극시켜주면 됩니다.
아무리 유명한 한의사를 찾아가도 실제적인 경락과 심리적인 특성을 결부시켜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환자의 특성에 맞춰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많은 방황과 갈등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한방의 새로운 접근방법을 찾게 될 것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D大 P교수님과 제가 학교 다닐 때 함게 하숙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히프가 커서 '오리 궁둥이'란 별명을 가졌는데,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해요. 그저 자고 쉬는 것만을 좋아합니다. 이런 분들은 陰德이 있습니다. 인내심이 강하고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반면 머리가 크고 몸통이 작은 사람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陽的인 사람은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陰的인 사람은 몸집에 비해 머리가 작습니다. 독맥과 임맥으로 표현되는 이 두 특성은 기본적인 마음의 어떤 긍정적인 상태와 부정적인 상태를 의미함을 알아야 합니다.
周易이 경락으로 있음을 一 乾天, 二 兌澤, 三 離火, 四 震雷, 五 巽風, 六 坎水, 七 艮山, 八 坤地, 任脈・督脈의 예로써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방이란 참 오묘한 학문입니다. 환자를 보고 "임맥을 補해야겠군", 혹은 "독맥을 瀉해야겠어" 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臟腑상태라든가 觀形察色도 했겠지만 그 환자의 성격이 어떻겠구나를 간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七情의 浮沈을 알지 못한다면 이것은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환자가 오면 그 환자의 긍정적인 차원과 부정적인 차원,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남을 위주로 생각하는가, 욕심이 많은가, 분노가 많은가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체내의 經脈이 서로 상대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상대성이란 곧 우리 마음의 상대성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대성을 예민하게 관찰해야 각 경락이 지닌 특징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육은 거의 주입식 교육이지요. 자신의 알고 있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형식인데 저는 그런 식으로 교육시키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본래 갖고 있는 것을 재확인하고, 확대 해석을 통해서 보다 큰 눈[目]을 뜨고 올바른 길을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 속의 기쁨과 슬픔, 긍정과 부정, 적극과 소극... 들을 觀해야 임맥과 독맥을 깊이 인식할 수 있듯 여러분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상태까지, 그 갈등의 작은 부스러기까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 바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관찰함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陰陽・四象・八卦・五行의 움직임과 六經을 이야기 했고, 특히 六經의 상관관계를 알기 위해서는 직관을 터득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병이란 엄청나게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黃帝內經"을 보면, '가까운 것을 빌어 먼 것을 얘기하고, 안을 터득해서 바깥을 안다. 몸 가까운 일을 충분히 장악하고 있으면 신변에서 먼 일까지 반드시 추리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긍정과 부정은 天地問題이고, 나와 너는 氣血問題이므로 이러한 상태의 에너지를 잘 관찰하면 임맥, 독맥이 갖는 병환까지도 관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모든 것은 모두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공부를 자기 관찰없이 남의 이론만 등장 시켜서 하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內經"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뛰어난 학술을 이용하는 자는 점점 번영하고, 경멸하여 돌아보지 않으면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 학술의 정도로 가지 않고 억측을 멋대로 하여 엉터리 학술을 논하는 자는 하늘의 벌을 받을 것이다' 라는 경고를 "內經"은 여러 차례하고 있습니다. '사물의 첫머리를 알면 끝도 완전하고 명백하게 察知할 수 있다' 사물의 첫머리란 사물을 볼 때 일어나는 여러분들의 인식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요 마음입니다. '이러한 정연한 조리를 가미하되 빠진 것 없이 영원히 보존토록 하라' 고 학문에 대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경희 학회지 "醫仁"에 '東洋醫學革命小考'란 제목 하에 한의학의 문제점을 제시해 놓았는데 여러분이 그 내용을 참조해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속의 내용을 한 마디 인용해 보면 '건강한 동양의학자라면 "本草綱目"에 없는 국내 처음으로 수입된 약초라도 그 성분을 알아낼 수 있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엔 건강한 동양의학자라는 전제가 붙습니다. 입이 쓰디쓴 담배 골초에서 맛을 보라고 한다면 (감별하라고 한다면) 문제가 있겠지요. 맛을 제대로 본 후에라야 무슨 경락에 入經하겠는가를 알아 낼 수 있겠지요.
"方藥合編"의 구성은, 맨 윗편은 본초에 대한 지식, 上統은 補하는 약, 中統은 和解하는 약, 下統은 瀉하거나 치는 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령 杏林書院版 182페이지 136번 附子를 보면 附子의 藥性, 歸經 등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설사약은 설사시키는 약 입니까, 설사를 멎게 하는 약 입니까? 후자지요. 해열제는 열을 식히는 약인데 약성이 덥겠어요? 차겠어요? 이것은 어린아이 같은 질문이지만 六經은 이렇게 쉬운 논리로 추론해 들어갑니다. 두통은 주로 火熱에 의한 것이므로 두통약의 성분은 차겠지요? 두통약의 70%정도는 차가운 성분이라는 것이 우리 한방의 추리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頭無冷痛, 腹無熱痛', '머리는 차가와서 아픈 법이 없고, 배는 뜨거워서 아픈 법이 없다' 이건 치료의 대원칙입니다. 이번엔 利尿劑를 봅시다. 이뇨제는 맛이 어떨까요? 담담하지요. 그러면 왜 이뇨제의 맛이 담담할까요? 이론상 淡味는 行氣시키고 利한다고 하지요. 木通・澤瀉・車前子・燈心 등 일체의 이뇨제는 그 맛이 담담합니다. 그런데 같은 이뇨제라 해도 車前子는 몸이 허한 사람의 몸기운을 깎지 않고 이뇨를 시키고 싶을 때 쓰고, 木通은 성분이 강하기 때문에 좀 건강한 사람에게 쓰는 겁니다. 淡味가 行氣시키고 利尿시키는 작용이 있지만 그저 淡味 하나로만 외워서는 곤란합니다. 그 담담한 맛중에서도 輕重을 가릴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附子를 먹으면 몸이 더워진다는데 그렇다면 厥陰・少陰・太陰・少陽・陽明・太陽의 六經 중 어디로 들어가겠습니까? 少陰 또는 少陽으로 들어갑니다. "方藥合編"에서 附子의 藥性을 보면 (手少陰命門三焦也... )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命門, 三焦는 少陽입니다. 이렇게 附子는 少陰經과 少陽經으로 들어가므로 몸을 덥게 하는 성질을 가진 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少陰經으로도 들고 厥陰經으로도 든다면 이건 덥기도 하고 風氣도 있겠구나 하고 추리할 수 있지요. 어떤 약의 약성이 시큼하기도 하고, 짜기도 덥기도 한데다, 또 甘味도 있다면 4가지 경락에 들어가겠지요. 神農氏의 혀와 오늘날 건강한 우리의 혀와 다르지 않을텐데 우리 왜 이런 것을 추리하지 못하는가? 그 까닭은 六經과 四象이 기본적으로 이해되지 못한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것은 手太陽小腸經으로 들어가고, 어떤 것은 手太陽과 足太陰으로 入經하는 지에 대하여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며, 氣와 味와 性이 그 경락의 성질과 어떻게 유사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약은 藥性이 冷한데도 少陰經으로 들어간다고 해 놓은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 경락을 치료한다는 뜻으로 붙여 놓은 것인데 "本草綱目"에도 잘 설명을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잘 새겨 들어야 합니다. 少陰經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少陰經絡을 치료한다는 말입니다. 즉 해열제나 설사약이라는 말은 똑같습니다.
고전의 내용을 풀이하다보면 난해한 부분이 많은데, '醫者는 醫也라' 의사는 그 뜻을 얻어야지 문자에만 매달리면 참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네 부모형제를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했고 한편으로는 "네 부모를 하느님같이 공경하라" 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二律背反的이라고 비판합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율법학자들과 성전에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가 오니까 "저 여자가 누구냐?"라고 했어요. 그러자 어느 신학자가 예수님을 불효자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근시안입니다. 이런 것을 방편설이라고 하는데 여러분들이 방편설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상황을 접함에 觀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때의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는 결코 방편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만은 겸손으로 치고, 너무 열등감에 젖어 있는 사람에겐 자신감을 넣어주는 식으로 상황에 따라 방편을 달리해야 하는데 하나는 攝受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折伏하는 방법입니다. 받아들일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실한 건 깎아주고 虛한 것은 補해 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성질이 급하고 날카로와서 치고 부수는 특징이 있고 또 한 사람은 너무 온후하고 나약해서 남을 살리되 자신을 죽인다면 이 두 사람은 모두 결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無有定法이 佛法이라'했습니다. 일정한 법이 없음이 깨달은 자의 법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의 법은 단지 불법만으로 제한되지 않고 "黃帝內經"의 법도 되는 것입니다. 세상사에 일정한 법이란 없습니다. 더운 것은 차게, 찬 것은 덥게, 또는이열치열도 있습니다. 산에 불이 났는데 오히려 다른 쪽에 불을 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일정한 법이 없음을 앎이 바로 깨달은 자의 모습입니다. 太陽經이다, 少陽經, 혹은 厥陰經이다 하는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동의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동양의학의 기본철학적 구조는 인생을 유쾌하게 사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유태인의 상술을 보고, "당신은 일하기 위해 먹는 거요. 아니면 먹기위해 일하는 거요?" 하고 질문을 하면, 유태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먹기 위해서 일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지요. 식사 중에라도 책이나 서류를 봐야할 때가 있는가 하면, 식사를 마치자 마자 소화도 되기 전에 책상에 앉기도 하고, 마치 쫓기듯이 허겁지겁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태인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식사는 유유하게. 한두어시간씩 즐깁니다. 여러분은 먹기 위해 공부하십니까? 공부하기 위해 먹습니까? 공연히 의무감 속에서 공부하지는 마세요. 학문 그 자체가 즐거워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엔 학점도 없고, 아무런 권위의식도 없고 시험의 공포도 없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찾아온 이 기백은 일단 학문하는 태도에서는 100점입니다. 그만큼 학문하는 태도는 즐거워야 합니다.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진 듯한 의연하지 못한 학문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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